

3월 걷기 좋은 계절이 왔다. 경복궁 서쪽 마을인 서촌은 봄을 비롯해 사계절 내내 걷고 싶어지는 마을이다. 근현대사의 흔적을 간직한 건물들은 옛 시절을 떠오르게 만들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은 익숙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북촌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서촌으로 떠나봤다.


- 깔끔하게 정리된 북촌길과 달리, 서촌길은 복잡하고 불친절하다. 표지판도 없어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서촌은 행정구역으로 볼 때 효자동, 통인동, 누상동, 옥인동, 청운동 등 총 9개 구역을 포함한다. 때문인지 조금만 걸어도 도로명이 휙휙 바뀌는 신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 서촌은 근현대의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다. 시인 이상과 윤동주, 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박노수 등이 대표적인 서촌 예술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서촌은 눈에 띄게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많아졌다. 길목마다 보이는 작업실과 공방들도 적지 않다. 오며가며 보게 되는 작업실 풍경도 서촌의 볼거리 중 하나다.
- 서촌은 길을 잃기에 딱 좋은 구조다. 겹겹이 세분화된 골목길은 멘붕 사태를 여러 번 불러일으킨다. 특히, 초행길이라면 지도를 들고 가도 까막눈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이럴땐, 마음을 비우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걷는 산책을 권한다. 아무 골목이나 골라잡아 걸어도 어떻게든 서로 혈관처럼 이어지기 때문이다.
- 길을 좀 더 빨리 찾고 싶다면, 주민들에게 길을 묻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검색해도 좋지만, 좁은 골목 덕에 더욱 헷갈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지도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걷다보면 의외의 장소를 만나게 되는 재미도 있고, 원했던 장소를 우연하게 발견하는 맛도 있다. 어릴 적 한 번쯤 보았던 미로 같은 골목길 탐험도 흥미 요소다.


- 1. 통인시장
- 통인시장은 서촌 골목을 탐험하기 위한 필수코스다. 골목들이 통인시장의 뒤편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이곳에서는 먹을거리, 볼거리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통인시장의 명물인 ‘기름 떡볶이’를 비롯해 ‘도시락 카페’를 즐길 수 있다. ‘기름 떡볶이’는 얼마 전 방한한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이 맛보며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매우면서도 쫄깃한 맛이 중독성 있다.
- ‘도시락 카페’는 뷔페처럼 통인 시장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카페에서 1개당 500원인 엽전을 구입하면 빈 도시락통을 주는데, 받은 도시락통을 들고 시장 안을 다니며 가맹점은 반찬가게, 분식점, 떡집 등에서 반찬을 사면된다. 엽전 한두 개로 반찬 한가지씩을 살 수 있다. 카페로 돌아온 뒤 밥과 국을 구입해 함께 식사할 수 있다.

- 2. 박노수 가옥
- 박노수 가옥은 일제시대 가옥양식을 그대로 갖춘 곳이다. 대표적 친일파인 윤덕영이 그의 딸을 위해 지은 집으로 조선 말기의 한옥양식, 중국식, 서양식의 건축 방법이 한데 섞인 절충식 가옥이다. 이곳이 박노수 가옥이라 불린 것은 1972년부터 동양화가 박노수가 이 집을 소유하면서부터다
- 2층의 증축 부분을 제외하곤 원형이 잘 남아 있어 1930년 후반 한국의 저택 건축 설계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소박한 앞마당과 멀리 내다보이는 서울 일대가 감탄을 부른다. 현재는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무료로 전시를 볼 수 있다. 관람은 오전 10시~오후5시 30분(화~일)이다.

- 3. 윤동주 하숙집 & 티베트 박물관
- 서촌의 누상동 방향은 윤동주 하숙집과 티베트 박물관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 윤동주 하숙집은 시인 윤동주가 1941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에 머물렀던 곳이다. 그가 존경했던 소설가 김송이 살던 집으로, 윤동주는 이곳에서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의 대표작들을 썼다. 현재 집의 원형은 없어진 상태며, 담 너머로 보이는 태극기가 쓸쓸함과 안타까움을 더해주는 곳이다. 티베트 박물관은 벽돌 담에, 철문, 석상과 빨간색의 독특한 우체통이 눈길을 끈다. 내부는 카페와 박물관 형태를 합친 방식으로 곳곳에서 티베트의 독특한 물화를 즐길 수 있다.

- 4. 대오서점
- 대오서점은 서촌의 명물 중의 명물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이라 불리는 이곳은 64년때 운영 중이며, 현재는 책을 파는 일은 중단한 상태다. 서점 내부를 구경하고 싶으면 입구에서 엽서를 한 장 구매하면 된다. 이 수익금은 서점의 수리와 유지에 사용된다. 서점 내부에는 흔히 볼 수 없는 오래된 책들이 가득 쌓여 있다. 여러 뮤직비디오와 드라마 ‘상어’에도 등장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대오서점의 옆에는 카페도 함께 운영되고 있는데,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시간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